세계경영참여

자랑스런 대우인

나이지리아 Kwale를 떠나며

이태희 09.12.15 조회수  7913

 나이지리아 KWALE를 떠나며 (2003년 4월) 
 
고국에서 가을하늘의 높음과 맑음 그리고 가을향기의 싱그러움을 채 느끼지 못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낯선 나이지리아 땅으로 온 지도 이제 6개월이라는 긴 날로 모아졌습니다.
고생스럽고 어려웠지만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던 이곳 DELTA 주 KWALE CAMP 및 NAOC 현장에서의 생활을 접고 새봄이 무르익는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준비하며 가족과 재회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마음이 설레는 날이 되었습니다.
 
설계한 것을 직접 현장에서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잘못된 점을 발견하고 개선점을 찾으면서 EPC 공사에 대한 새로운 각오와 실력배양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받고 가는 느낌입니다.
공사의 3대 기본 요소인 3M(MAN, MATERIAL, MACHINERY) 어느 하나 제대로 원활하게 지원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사가 지연되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THIS IS NIGERIA'라는 자조적인 말의 진정한 의미도 알았습니다.
 
나이지리아에 온지가 얼마 되지 않아 나이지리아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얘기를 할 때 들었던 '된장'끼가 덜 빠졌다는 말을 언제 사용하는 가도 알았습니다.
하나의 공사를 위하여 구성원 개개인의 실력과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이 뛰어 가야하는 팀웍이 갖는 중요성 그리고 공사책임자의 고민, 어려움 그리고 그 외로움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오지의 해외생활을 위해서는 강인한 정신과 튼튼한 육체가 개인적으로 필수적 요소이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의 재산이며 무기임을, 주변 동료들이 쓰러져 가고 스스로 견디지 못하여 귀국하는 상황을 보며 건강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근무하던 많은 직원들이 갇힌 모르모토와 같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MIND CONTROL이 안되어 팀웍을 깨는 언행을 하고는 타의에 의해 떠나갈 때 찾아낸 맹자의 '人不知而不不亦君子乎'를 벽에 붙여 놓고 이곳에서의 생활 신조로 삼고 스스로를 다져 가는 시간이였습니다.
 
주변 여건 상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갇혀 산다는 심적 어려움을 평소 읽어 나가기 어려운 책과 더불어 풀며 지적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던 나를 위한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우기가 끝나고 건기에 들면서 숙소와 현장에서 벌레와의 전쟁을 하면서 하찮은 미물들의 생명력과 끈질김에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으며, 고등동물인 인간이 잠들었을 때 그들의 공격에는 인위적으로 대응을 할 수가 없었으며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끔찍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갇힌 생활에서 오는 심적인 어려움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지난 12월부터 숙소 옆 모래밭에서 스스로 자란 나이지리아 채송화를 모아 내 숙소 창문 밑에 화단을 만들고는 매일 저녁 식사 후 물을 주며 가꾸어 꽃이 피는 것을 보는 것이 커다란 위안거리 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들이 무수한 자손들을 모래밭에 자라게 하여 3 개월 동안 2 개 동 숙소의 각 창문 밑과 숙소, 식당 그리고 사무실간의 보도 양쪽에 매일 저녁식사 후에 몇 포기씩 옮겨 심어 이제는 하나 둘 꽃이 피며 완연한 꽃길이 된 것이 가장 재미있고 즐거웠던 나만의 취미생활이기도 했습니다.
KWALE 프로젝트는 언제 끝이 날지 모르지만 나만의 프로젝트-캠프 내 꽃길조성-를 진행하면서 모든 직원들이 좋아하고 나의 여유로움을 부러워하고 칭찬해 줄 때 더없이 좋았습니다. 1분도 걸지 않는 사무실과 숙소간의 출퇴근길에 전신주처럼 자리를 잡고 커 가는 채송화들을 보는 즐거움이 캠프생활에 정신적으로 많은 안정감을 준 것 같습니다.
 
2주마다 돌아오는 휴일에 짬을 내어 캠프 이웃 동네를 방문하여 아랫도리만 가리고 뛰어 노는 어린이들에게 종이비행기, 스피드 보트, 바람개비 그리고 성냥갑을 이용하여 자동차를 만들어 주었고, 돌을 가지고 노는 사방치기와 비석 치기를 같이 하며 또 손재주들이 없어 실을 가지고 노는 뜨개질을 가르쳐 줄 때의 어려움, 간단한 마술을 보여주며 또 손톱을 깎아주며 그들과 피부를 맞대고 지낸 시간들은 소중히 기억하고픈 추억이기도 합니다.
20명이 넘는 녀석들과 같이 찍은 사진, 각자의 집 앞에서 형제와 자매만을 모아 각기 자기들만의 폼으로 또는 사진기에 익숙하지 않는 어색한 표정을 보며 찍어 준 사진을 빨리 현상하여 보고 싶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보내주겠다는 그들과 약속을 지키고 싶습니다. 이곳의 어린이들과 지내며 그들 어린이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함을 보며 'WE ARE THE WORLD'라는 캠페인 노래의 뜻을 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의식주라는 삶의 3대 요소 외에 삶의 여유와 풍요로움은 국민성, 교육열, 국가의 경제력을 기초로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전기도 TV도 없이 배고품을 느끼며 자연과 더불어 놀았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과 많은 자식들을 위하여 돈을 버느라고 고생하시던 부모님들의 시절을 이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날씨 탓인지 선천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공사를 하면서 지시된 하루의 작업량을 스스로 마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감독의 눈길이 벗어나기만 하면 숨어서 쉬고 있는 작업자들의 모습과 대우건설과 커뮤니티와의 협정 내용을 이런 저런 이유를 달아가면서 깨며 수시로 파업을 하여 공사에 영향을 주는 사태를 보며 그리고 모폴들이 이들을 향해 쏘는 총소리를 들으며 그 옛날 식민지 시절에 채찍을 휘두르며 이들을 지배했던 정복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던 시간이기도 합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지 43년이 되었지만, 양질의 석유와 가스를 생산하여 수출하면서 벌어들인 국가의 부가 잘못된 메이저들과의 계약과 부패한 위정자들 때문에 모는 국민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점과 이런 불합리한 사항들을 타파해 나가지 못하는 국민성을 보며, 각기 다른 말을 사용하는 부족들로 구성된 나이지리아의 한계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년 동안 똑같은 기온과 변함이 없는 녹색의 밀림이 주는 주변 자연환경의 지루함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4 계절 각자가 주는 뚜렷한 변화와 생동감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 면에서 삶에 자극과 재미를 주어 왔다는 소중함을 알게 되어 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살이의 의미와 재미는 나 혼자 만의 힘으로는 되지 않고 주변 동료와 친구들의 협조와 그리고 그들과 같이 느끼는 따스한 정의 교류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들이 보여준 관심과 격려가 나이지리아에서의 생활을 건강하게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하나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같이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못 느끼던 가족과의 정을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떨어져 있으며 내 삶과 그들에 대한 사랑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들이 있음으로 해서 솟아나는 사랑의 힘이 크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귀중하고 소중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나이지리아에서 보낸 180이라는 나날이 나의 삶 중에서 비롯 1/N이지만 여기서 경험한 여러 가지가 세상을 달리 바라볼 수 있는 능력과 힘을 깨우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대우건설과 본사(대우엔지니어링)의 방침에 따라 건강한 모습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여기를 떠나고자 합니다.
이곳에서는 우기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나기들이 더위를 식혀주어 반갑기도 하지만 공사의 공기에 영향을 주어 원망스러운 때입니다.
밤으로는 캠프에서 울려 퍼지는 두꺼비의 합창소리가 낭만적이지 못하고 소음으로 들리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며칠 내에 고국에서 만개한 개나리와 진달래를 보며, 벚꽃 길을 같이 거닐고 봄의 향기를 가득히 마시며 떨어져 지나온 시간을 모두와 같이 얘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PS : 상기 글은 대우엔지니어링 소속으로 대우건설과 합동으로 수행한 Kwale PJ에 2002년9월부터 2003년 4월 초까지 현장에 파견 생활을 뒤돌아 보며 쓴 글로, 대우엔지니어링 사보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저는 현재 삼성엔지니어링 사업1그룹 소속으로 멕시코 만사니오 LNG Project에 2009년 9월 말부터 파견 근무중에 있습니다.
 
 

첨부파일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