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제보 /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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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섭회원 기고3]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체제전환국들 간의 비주류 경제블럭 구상(3)
세경1팀 09.09.23 조회수 6366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대우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대우
대우는 루마니아 공장을 1994년에, 폴란드 공장을 1995년에, 우크라이나 공장을 1997년에 잇달아 인수하게 됩니다.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정부가 대우를 자신들의 파트너로 선정한 데에는 대우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우자동차는 1972년부터 1992년까지 GM과 합작 관계에 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대우자동차는 GM의 반대로 인하여 자신의 제품을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또한 신제품을 개발하여 출시하는 것 또한 GM의 반대 때문에 원활하게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GM의 이러한 행태는 앞서 말씀드린 바 있는, 그들의 ‘각개격파’ 전략에서 연유합니다. 즉, GM은 대우자동차의 사업을 한국 내수 시장에 국한시키기를 원했고, 자체적인 신제품 개발 보다는 이미 개발되어 있는 GM의 모델을 들여와서 값싸게 조립해서 팔기를 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대우자동차가 적자를 기록하는 것은 그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GM은 한국 대우자동차에게 부품과 설비를 팔아서 이미 자신의 이익을 챙긴 상태였고, GM의 전체 규모를 감안해 볼 때, 대우자동차에서의 적자는 자신들의 전체 손익에 영향을 줄 만큼 큰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우자동차는 1992년에 GM과의 합작 관계를 청산하고 독자적인 자동차 회사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개시합니다. 대우는 후발 주자로서의 약점을 보완하고, 독자적인 자동차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신제품 개발을 서두르고 해외 수출 시장 개척 및 해외 생산거점 확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해외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대우의 이러한 처지는 당시 동유럽 국가들의 이해관계와 잘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즉, 대우는 당시 동유럽 국가들이 원했던 이상적인 파트너의 모습에 가장 근접해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대우는, 후발 주자들의 목줄을 쥐고 흔들며 자신들을 위협하고, 이해관계를 따져서 언제라도 손 털고 떠날 수 있는 세계 메이저 업체가 아니었다는 점, 오히려 메이저 업체들의 횡포를 겪어볼 만큼 겪어 본,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업체였다는 점 등이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세계 메이저 업체들과의 제휴를 포기하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잃어버리겠지만, 어차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첨단 기술이 아니라 중급 기술이었으므로 이는 대우를 자신의 파트너로 선택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관계는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국영 공장을 인수하면서 대우와 현지 정부들 사이에 이루어진 많은 약속을 들여다보면 더욱 분명해 집니다. 대우는 생산설비를 갖추기 위한 투자, 부품 국산화, 기술 이전, 수익이 발생할 경우 본사로 송금하지 않고 현지에 재투자할 것 등을 주로 약속하고,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정부는 대우에게 본격 생산 이전까지 제한적으로 완성차 (혹은 SKD)를 대우가 무관세로 수입하는 것을 허용하고, 차량 생산에 필요한 설비 및 CKD 생산에 필요한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 또한 면제해 주는 것을 주로 약속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이러한 혜택을 법제화하기 위해 대우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하지 않은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이 대우에게 속은 것이다”, “리베이트 주고 뇌물 줘서 이루어진 것이고 대우의 세계 경영은 뇌물이 통하는 나라에서만 가능했다”, “정경 유착의 세계화다”라고 평가하는 시각이 있습니다만, 인수 과정을 잘 분석해 보면 이러한 시각들은 근거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대우의 경험과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
오히려 이러 경험들을 잘 평가하여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 구축 작업에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대한민국은 제국주의를 통해 남의 나라를 침탈한 적이 없고, 오히려 20세기 초 강대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어 이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다른 나라들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 아직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고 여전히 성장 중인, 젊고 역동적인 나라라는 점 등을 강조함에 있어, 대우가 동유럽에서 자동차 사업을 통해 구축한 기업 이미지의 경험을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대우의 경험은 조그마하고 힘없는 나라라는 대한민국의 ‘약점’ 조차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제 사회에서 ‘강점’이 될 수도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대우가 현지 정부로부터 받은 각종 혜택과 WTO.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정부는 대우에게 본격 생산 이전까지 제한적으로 완성차 (혹은 SKD)를 대우가 무관세로 수입하는 것을 허용하고, 차량 생산에 필요한 설비 및 CKD 생산에 필요한 자동차 부품에 대한 관세를 면제해 주는 것을 약속하였고 이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서,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경우 당시 WTO 회원국이었으므로 이 조치가 WTO의 ‘최혜국 대우’ 조항을 위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폴란드와 루미나아가 이 조치로 인하여 WTO에 제소 당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로서는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 이들 나라의 법률이 WTO 관련 조항을 교묘하게 피해갔을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이러한 혜택을 특정 업체에게만 부여하는 법안이 발표될 경우 설령 그 법률의 내용이 WTO 조항의 위반을 교묘하게 비해갔다고 하더라도 경쟁업체들이 일단 WTO에 제소하는 것이 일반적임을 감안해 볼 때, 이들 나라들이 WTO에 제소조차 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다른 이유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당시 이들 나라에, 폴란드 정부나 루마니아 정부를 WTO에 제소하는 것을 추진할 만큼의 커다란 이해 관계를 가진 외국의 경쟁 업체들이 없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폴란드에는 GM을 비롯, 유럽의 많은 업체들이 진출해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볼 때 이 또한 만족스러운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도로 확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