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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섭회원 기고1]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체제전환국들 간의 비주류 경제블럭 구상(1)
세경1팀 09.09.23 조회수 6583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체제 전환국들 간의 비주류 경제 블럭 구상
- 대우의 자동차 해외 사업에 대한 하나의 시각 (초안)
들어가며
대우의 ‘세계경영’을 간단하게 평가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대우의 ‘세계경영’은 대우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전인 1998년말 기준으로 370여개의 현지법인과 140여개의 현지 지사들이 동원되어, 자동차, 전자, 중공업, 무역, 금융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진행된 방대한 규모의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이 글에서는 논의의 범위를 대우가 폴란드, 루마니아, 우크라이나의 현지 공장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자동차 사업에 한정하여 ‘세계경영’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동유럽 지도를 살펴보겠습니다.
대우는 이 지역에서 폴란드, 루마니아, 우크라이나의 국영 자동차 공장을 인수하였는데,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세 나라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으며, 사회주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을 추진 중이었던 나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당시 과거 자신들의 경제활동의 주된 무대가 되었던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아무런 준비 없이 자본주의 국제경제 질서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완전히 달라진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국가적 미래를 새롭게 개척해 나가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공통적으로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당시 이 나라들이 기존 주류 국제 경제 질서에 대해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폴란드
폴란드는 1995년 7월 1일 WTO에 가입했습니다. WTO가 출범한 것이 1995년 1월이었음을 감안하면, 폴란드는 비교적 신속하게 WTO 체제에 가입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폴란드의 신속한 WTO 가입은, 아직까지도 WTO에 가입하고 있지 않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입니다.
폴란드가 신속하게 WTO에 가입한 것은 조속한 시일 내에 유럽 연합 (EU)에 가입하기 위한 수순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EU는 회원국이 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1) 민주적인 제도의 구비, 2)법치주의 토대 구축, 3) 시장 경제의 도입, 4) 유럽 연합 내에서 이루어지는 자유 무역을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토대의 확보, 5) 유럽 연합 회원국에게 부과되는 의무 이행 능력 등을 요구하고 있는데, 폴란드 정부는 WTO 가입을 통해 시장 경제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EU 회원국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을 것이며, WTO 가입을 통해 폴란드 경제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폴란드는 2004년 5월 1일에 헝가리, 체코 등과 함께 성공적으로 EU에 가입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폴란드가 이런 전략을 택한 배경은 무엇일까요?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폴란드는 일단 지리적으로 서유럽과 매우 가깝습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전문가들은 동유럽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유럽과 아시아 (유라시아) 대륙 지배를 위한 심장부로 보아왔고, 동유럽 내에서 독자적으로 강력한 지역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폴란드가 서유럽에 통합되는 것이 폴란드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의견을 피력해 온 바 있습니다. 폴란드는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여 자신의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WTO 체제 - 주류 국제경제 질서
이쯤에서 이후 논의를 위해 WTO 체제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WTO는 전 세계적으로 자유 무역을 장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기구로서 1995년 1월에 출범하였습니다. 2005년 2월 현재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체제 전환국들과 기타 소수의 나라들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미국, 일본, 유럽의 국가들, 그리고 중국 등 148개국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WTO 회원이 되면 그 나라는 자신의 경제적 규모, 산업의 발전 수준 등을 고려하여, 다른 회원국들과의 협상을 통해 자신의 나라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하여 얼마의 관세율을 적용할지를 정하게 됩니다. 협상을 통하여 일단 관세율이 정해지면, 그 나라는 수입되는 상품에 대하여 정해진 관세율 혹은 그 이하의 관세율을 자신의 재량 하에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관세율을 적용할 수는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나라가 WTO에 가입하여 수입 자동차에 대한 관세율을 10%로 정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A는 수입자동차에 대하여 10%의 관세율을 적용할 수도 있고, 5%의 관세율을 적용할 수도 있으며. 관세를 아예 면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A라는 나라가 수입 자동차에 대하여 11%의 관세율을 적용한다면 이는 WTO 협정 위반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WTO가 회원국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무가 바로 최혜국 대우 (Most-Favoured-Nation Treatment)입니다. 이는 회원국이 특정 국가만 차별 대우하는 것을 금지하는 의무로서, 한 회원국이 특정 국가에게 관세 상의 혜택을 제공할 경우, 그 회원국은 그 혜택을 WTO 회원국 모두에게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WTO 회원국이 C, D, E라는 나라에서 수입되는 자동차에 대하여 관세율 10%를 적용하는 반면, B라는 나라에서 수입되는 자동차에 대하여 관세율 5%를 적용한다면 이는 WTO 협정의 ‘최혜국 대우’ 조항을 위반한 것입니다. 즉, A가 B로부터 수입되는 자동차에 대하여 관세율 5%를 적용하고 싶다면 A는 이 관세율 5%를 B뿐만 아니라, C, D, E 모두에게 적용하여야 합니다.
기아 자동차의 인도네시아 국민차 프로젝트가 이러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1996년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는 기아자동차의 ‘세피아’를 ‘국민차’로 선정, 기아자동차에게만 관세 감면 혜택을 부여하였는데, 당시 일본, 미국, EU 등이 인도네시아 정부의 이 조치가 WTO 협정의 ‘최혜국 대우’ 조항을 위반하였다고 주장하며 이를 WTO에 제소한 바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상이한 전략을 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와 더불어 WTO에 업서버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을 뿐 아직 WTO에 정식으로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EU에 가입하고자 하는 가시적인 움직임도 그 동안 없었습니다. 2005년 1월, 미국 등 서방세계와 가까운 성향으로 알려져 있는 유센코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향후 우크라이나가 어떤 국가 전략을 선택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만, 적어도 현재까지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는 EU보다는 러시아와의 부분적 협력 관계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1997년에는 우크라이나가 자동차 수입에 대한 상호 관세 면제 협정을 러시아와 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협정이 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이와 유사한 움직임들이 당시 여러 경로를 통해서 포착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크라이나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패권을 견제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의 패권을 견제하기 위한 과거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이 1997년에 결성했던 모임인 ‘구암 (GUUAM)'에 우크라이나는 우즈베키스탄, 그루지아, 몰도바, 아제르바이잔 등과 함께 참여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정책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요?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가치는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지리적으로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등의 동유럽의 국가들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미국과 유럽, 서쪽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가 취한 대외적 입장은 이러한 배경에서 연유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정책은 미국 /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서 일찌감치 어느 한쪽의 편에 서기보다는 모호한 입장을 계속 취하면서 자신의 몸값을 계속 올리려는 그러한 시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루마니아
루마니아는 폴란드와 유사한 전략을 택했습니다. 루마니아는 WTO 출범과 동시에, 즉 1995년 1월 1일 WTO에 가입했습니다. 곧 이어 EU에 가입하기 위한 노력을 해온 결과, 2007년에 EU에 가입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폴란드와는 달리 루마니아는 EU의 회원 자격 요건을 갖추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루마니아의 경제력은 폴란드와 비교해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취약합니다. 폴란드 1인당 GDP가 2004년 기준으로 6,300불 정도인데 반해 루마니아는 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러한 경제력의 차이는 루마니아가 EU 회원 자격을 얻는 데에 계속적으로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겠습니다. 아울러 폴란드가 과거 사회주의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일찍 서구 민주주의를 수용하기 위한 시도를 해온 반면, 루마니아는 차우체스크 철권통치 이후 여전히 정치적 낙후성을 극복하고 있지 못한 점도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루마니아는 폴란드나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특별히 지정학적 가치가 높지 않습니다. 루마니아는 폴란드와는 달리 서유럽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폴란드와 같이 서유럽으로의 통합을 쉽게 결정하기에는 애매한 측면이 있으며, 유럽과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심축으로부터 비켜나 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가 누리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계속)